결혼식 때 뵌 친척들 생각 : .... 우리 친척들이지만 무서웠음 ()
-큰아버지네
큰아버지께서는 소싯적 그림을 하려 하셨다.. 원래 그림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셨고, 관심도 많아서 젊은 시절 아빠랑 같이 국사교과서에서나 나오던 .. () 그 울산 암구대 벽화 있지 않은가, 그 그림의 묵화를 본뜨러 가신 적도 있으셨다 들었다. 중학교 시절 경복고에 미술 특기자로 제의 받았을 정도였으나 그치만 자존심에 그냥 시험쳐서 합격했다고 (..) 그리고 미대를 준비하시다가 여름방학 때 생각을 바꾸어서 치과의사이셨던 할아버지의 의견대로 의대를 준비했는데 바로 연대 치대 ! 우.. 우왕ㅋ굳ㅋ 더 놀라운 건 큰어머니셨다. -ㅅ-;; 큰 아버지네는 호주에서 사시기 때문에 나는 큰 어머니를 뵌 기억이 없다. 물론 어릴 적엔 뵈었겠지만 여튼 내 기억에서 큰어머니를 뵌 건 이번 결혼식이 처음이었다. 처음에 어느 다소곳한 분께 언니가 인사를 할 때는 몰라뵈었는데, 알고보니 큰어머니셨던 것이다.; 그리고 큰 어머니와 큰아버지는 ... 연대 CC... 그것도 미술 동아리에서 만나 인연을 맺으셨다고 했다. 큰 어머니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다만 아는 바라면 그 분이 다른 친척들이 함부로 말씀을 꺼내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점이었으며, 그분을 표현하는 단어가 '신여성' 같다라는 말인 것 밖에는 ....() 이대 의류학과를 가겠다는 사촌동생을 앞에두고 다른 친척들이 재수를 권하는 말을 이리저리 하고 있을 때 큰어머니가 말씀을 꺼내셨다. =_=..
자신은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항상 스트레이트로 최고의 학생이었고, 본인이 패션디자인을 희망해서 현재의 연대 생활과학대에 들어가서, 그곳에서도 항상 A를 찍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대학원까지 다녀 대학의 교수로 재임했었지만, 그 뿐이었다고. 자신이 논문을 쓰기 위해 전국의 공장을 방문하면서 조사했지만 한국의 상황은 도저히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교수가 되셨다고 했다. 사촌언니 역시 자신을 닮아 미술 분야의 재능이 특출해서 대학 갈 당시 패션디자인을 하겠다고 떼를 썼지만 자신이 말렸다고 했다. (현재 사촌언니는 모션 그래픽을 하고 있으며, 현재 대학강사로도 일하고 회사에서 프리랜서처럼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 ) 디자이너로서 사는 것은 물론 화려하지만, 굉장히 수명이 짧고, 받아주는 곳은 적으며 고생하면서도 자신의 창조력이 끝나는 순간 남는 것은 없었다고 말이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 하나가 굉장히 출중하여 의대를 갈 수 있었는데도 디자인이 하고 싶어서 디자인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교환학생을 다니고, 뉴욕에 가서 활약했지만 나이 서른이 된 지금은 도로 의대를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적성에 대해 고려하는 것도 좋지만 Hobby와 Vocational Field를 구별할 줄 알아야한다. 사회가 너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네가 사회 구조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너의 직업이 장차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서 고려하라는 말씀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어른의 말씀이다. 저 말에 내가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굉장히 놀랐던 것은 그 분이 입을 연 순간 중구난방식으로 전개되던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싹 정리한 것,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 그리고 세상사의 지혜를 조화롭게 버무려서 굉장히 논리 정연하고 침착한 자세로 다른 사람들과 사촌동생이 공감할 수 있게 말씀하신 점, 단호하면서도 강력하게 그 담화 공간을 자신의 독보적인 발언 공간으로 바꿔놓는 그 능력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래로 집안의 어른 중에 이런 분을 뵌 적이 없다. 들으면서 저 모습이 바로 가문의 맏며느리다! 라고 감탄했다. 물론 그분의 화려한 능력도 물론이었지만 그 분의 존재는 그 이상이었다.(...) 과연 다른 친척들이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엇다.
큰 고모네 :
큰 고모의 큰 딸인 언니가 드디어 미국에서 돌아왔다. 대학을 들어갈 때는 성적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 성대를 들어갔다 했다. 도 장학금에 약대까지 다니셨던(..) 큰 고모의 화려한 과거 경력에는 못 미치는 바였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뛰어난 성적은 거뒀던 언니는 상공부 장학생의 특채를 받고 졸업하자마자 자동으로 7급공무원이 되었다고 했다. 젊은 시절 무역상으로 잘 나가던 큰 고모부는 사업이 기울어지시면서 타국에 계시고(지금은 돌아오셨다) 시집에서도 냉대를 받으면서 삼남매를 어렵게 키운 큰 고모네에서 실질적인 장남의 역할을 한 언니였다. 안타깝게도 두 아들을 낳고서, 남편은 교통사고를 사별했지만 출세에 있어서는 그분은 참 운이 좋았다. 외교산업 관련으로 큰 일이 있었는데, 고시를 치고 들어온 사람들이 출세에 지장이 있을 까봐 모두 피한 결과 그 일을 그 언니가 맡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고생은 어마어마하게 했다. 그러나 언니는 일을 수행하는 데 성공했고, 결과는 10년만에 5급 공무원으로 뛰는 결과였다. 게다가,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국가에서 보내주는 유학을 미국으로 갔다왔다. 원래 미국으로 가는 자리는 나기 어려워서 애초에 기대않고 프랑스어 공부를 하고 있던 언니에게는 큰 우연이었다. 그래서 아들 둘을 데리고 미국에 가서 국가의 지원으로 2년, 자신의 힘으로 1년 2개월을 더 다녀서 박사학위를 따고 올해 가을인가에 돌아왔다. 현재 중앙부처의 공무원이 되었다고 한다. 큰언니가 예식장에 도착했을 때, 큰 고모는 언니의 옷 뒷자락을 바로잡아주면서 참으로 말할 수 없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일반 회사에 들어간 둘째 언니와 제약회사에 들어간 막내 아들보다 아마 몇 배나 더 소중할 테다. 큰 고모 부부는 그 언니와 같이 살면서 아이들을 봐주고 있다고 했다. 사족을 달자면, 나는 아이들을 보고 놀랐는데, 애들이 초6, 중1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무얼 먹고왔는지 포동포동하고 덩치가 크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 근데 아빠엄마 저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시면 곤란합니다.)
작은아빠네 :
현재 사촌동생의 재수 여부는 친척들 사이에서 태풍의 눈이다. 나머진 다 1등급인데 수학이 3등급 나왔다 -_-;; 현재 이대 의류학과랑 고대 건축공학에 내놨다고 하는데, 본인은 그냥 재수하지 않고 이대 의류학과에 다니겠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후회할 것은 알지만 사촌동생이 재수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의대에 대한 작은 엄마의 욕심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추석 때 내려갔을 때도 수시로 넣은 서울대 의류학과가 붙지않으면 바로 재수해라 ,.. (..) 라고 아침 식탁에서 말씀하셨는데 친척들을 앞에 두고 그럴 정도면 애랑 둘만 있을 때는 얼마나 심각했겠는가. 그렇기에 본인은 도리도리했지만 큰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조금 갈등하는 듯도 했다. 나는 재수를 하기를 권장했다. 아깝기 때문이었다. (학자금을 대출할 걸 생각하면 .. ) 그리고 작은 엄마는 결국 서울대 의류학과에만 붙으면 의대를 가라고 고집부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재수를 하기를 종용했다.
그리고 .. 항상 논란에 서 계신 삼촌 .. 이번 결혼식에 결국 불참하고 일본 여행가서 함흥차사가 되셨다. 사촌 동생의 추측을 들으면서 순간 얼이 빠질 뻔했다. 작년에 단약을 선언하신 이래로 오히려 조울증 상태는 악화되었고, 작은 엄마와 사촌동생은 반쯤 포기한 상태에 이르렀다. 집에서 그림만 그리고 계시거나 혼자 돌아다니신다 했다. 내 생각엔 상태가 거의 빈센트 반 고흐에 필적하고 계신다. 화요일에 있을 할머니의 제사미사 때 참석할 수 있도록 큰아버지네께서 사력을 기울일 것 같다.
내 기억 속 가장 인상 깊은 할머니의 모습은, 난을 치시던 모습이었다. 화선지 위에 붓으로 난을 그리시며 난은 이러저러하게 치는 것이다 라고 여덟아홉살 되던 내게 가르쳐 주시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양반가의 규수였던 할머님. 아마 우리 집안의 예술쪽 재능에 큰 영향을 남기셨을 거다. 실제로 할머님이 그리신 그림이 몇몇 점 남아있다.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매화를 그린 것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난을 즐겨 그리시던 할머니의 난 그림이 남아있는 것을 본 적이 없어 아쉽다. 도자기들도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
원래 11월 29일은 할머니의 제사날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본래 제사를 지내다가 삼촌네에서 그만 둔 것을 우리 집에서 다시 재개하기로 했기 때문에 결혼식 날짜랑 겹쳐서, 화요일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무교를 선언한 이래로 종교적인 행사의 관여하기 싫어하는 나지만, 관혼상제에 대해서는 예외로 치기 때문에, 꼼짝없이 성당에 가야한다. 그리고 친척들과 저녁식사를 하게 될 텐데, 이건 흔치 않은 기회다.
사실 난 종교에 얽히는 것을 싫어한다. 내 남편 될 사람은 절대적으로 무교이길 바란다. 사실 이번에 성당에 가게 되는 것도 달갑지 않다. 종교적인 모든 것과 그들의 공간을 싫어하는 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 공간이 그 시간에 어떤 양상을 띄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나 역시 종교적인 맥락 속에서 자라온 사람인지라, 가끔은 그런 상상에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다만 나 혼자, 홀로 그 공간에 있을 때. 밝은 별빛 아래과 희고 건조한 물가로 고요히 잠겨간다.
뭐 , 그 이야기를 차치해도 , 참 많은 것을 본 것 같다. 집에 돌아올 때는 차가 막혀서 고생을 좀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다. 간만에 악어가 선물해준 예쁜 티팟을 꺼내고, 선물받은 얼그레이 티백 하나를 꺼내 우려냈다:) 나는 차를 잘 우리는 편은 못 된다. 시간을 좀처럼 잘 맞추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해서 그렇다. 그렇지만, 차를 이렇게 예쁜 티포트에 우려 찻잔에 담아내고 그 수색을 보는 순간만큼은 , 참으로 좋다. 그 때만큼은 다른 사색을 접고서 나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차를 마시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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